pd수첩을 보고 초등교사가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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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4 23.03.09 (목) 11:02




밤 9시 21분에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pd수첩을 보고 있느냐는 거였다.

  

보장된 진로를 걷어찬 채

선생을 하겠다고,

전국에서 단 한 명의 교사를 뽑는다면 그게 내가 되면 될 일이라며

부모님의 만류를 뒤로 하고 호기롭게 들어선 길이었다.

   

한 인간의 성장 과정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는 게 너무 가치 있어 보여서 어쩔 줄을 몰랐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

출근길에 차에 치여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할 무렵, 처음 면직을 생각했다.

   

   

   

-엄마, 쉽지가 않다. 우리 반 애가 또 이랬어. 근데 부모가 연락이 안 돼. 부모가 연락을 안 받으면 난 아무것도 못해.

   

엄마는 아마

   

출근하기가 싫고, 피곤하고, 면상을 맞대는 인간마다 신물이 나는 게 돈 버는 일의 숙명인데 뭐 어쩌겠니 하셨겠지.

   

   

-그래도 보람이 있잖아, 방학도 있잖아, 연금도 나오겠지. 아마도 나오지 않겠니.

   

엄마는 산산조각 난 사금파리 더미에서도 보석을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 못 미치는 딸이라 산산조각 난 꿈이 서러울 뿐인 게 문제였다.

   

그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밤 아홉 시가 넘어서.

   

밤 아홉 시는 아주 상징적인 시간이다.

   

반드시, 지금 당장 이야기해야만 할 어떤 것을 내포한다.

 

   

   

미친 것들 아니냐, 저럴 거면 학교는 왜 보낸다니, 집에서 감싸고 키우지.

   

   

 

엄마는 보기 드물게 분통을 터뜨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