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 2차대전 미군과 독일군 최초의 연합작전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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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6 22.07.27 (수) 22:21





 

 1940 2월,  

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




 
 

오스트리아를 합병시킨 나치 독일은 고위급 포로들을

 따로 수용시킬 장소를 찾고 있는 중이었어.

  

그러다 전쟁 발발 이전부터 활강스키의 명소로 

각광받던 <이터> 라는 작은 마을 부근에서



 
  

관광호텔로 사용중이던 <이터 성> 이라는 

오래된 고성을 발견할 수 있었지.

   

당시이 성을 마음에 들어했었던 독일 점령군은 

성의 소유주였던 <프란츠 그뤼너> 에게

  

상당한 비용을 지불한 후 이터 성을 임대 받아 

VIP 수용소로 이용하고자 했으나

   

소유주의 강력한 반발로 수용소로는 사용하지 

못했고 독일군 고위장교들의 숙소로만 

이용되고 있었다고 해.

 

 

 

 

 



  

1943 2 7.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이 나치 독일의 수중에 

떨어졌으며 아프리카와 지중해소련에서도 

나치 독일이 밀어붙이고 있을 때 쯤,



 
 

<하인리히 히믈러>는 독일 점령지에서 독일군이

건물주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중이던

  

모든 시설의 소유권을 몰수하고 강제 징발하라는 

명령을 독일 점령지들에게 하달했어.

  

세계의 절반을 손에 넣은 마당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시설을 빌려야할 이유가 

없다는 히믈러의 생각 때문이었지.



 

히믈러의 지시로 인해 나치 독일에게 그동안 높은 

임대료를 받고 건물을 임대해 줬던 수많은 

민간인 소유주들은

  

급작스럽게 들이닥친 SS무장친위대의 협박과 

위협에 의해 빌려준 건물들의 소유권을 

강제로 박탈당하고 빼앗겨야 했어.



 
 

이터 성 또한 무장친위대의 조치로 인해 강제로 

징발되어 나치 독일의 소유가 되어버렸지.

  

SS무장친위대가 이터 성의 소유권을 빼앗자 그때서야 

비로소 VIP 전용 수용소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해.

 

 

 

 

 

 


  

1943 5 20.



 
 

포로 수용소로 개조된 이터 성은 무장친위대의 

관리를 받으며 프랑스에서 체포한 고위급 

포로들을 수감시키기 시작했어.

  

당시이터 성에 수감된 VIP 명단을 살펴보자면,

  

   1. 에두아르 달라디에 (전 프랑스 총리좌익정치가)

  

2. 알베르 르브룅 (전 프랑스 대통령우익 정치가)

 

3. 모리스 가블랭 (프랑스군 총사령관육군 원수)

 

    4. 막심 베이강 (프랑스군 원수최후의 사단 사령관)

 

5. 폴 레노 (프랑스 총리반나치 성향의 정치가)

   

6. 레옹 주오 (프랑스 노동총연맹 지도자)

  

7. 장 보로트라 (프랑스 스포츠 행정청장)

 

 


 
 

위 인물들은 모두 추후에 있을 연합국과의 교섭을 

대비해 독일이 일부러 살려둔 자들이었으며

  

포로이기 이전에 중요한 협상카드로 취급되어 

무장친위대에게 괜찮은 대우를 받으며 

수용소 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의식주와 수용소의 유지보수 및 잡무는 

모두 동유럽 출신의 포로들을 데려와서 

시키도록 했다고 해.

 

 

 




 

 1945 5 2.



 
 

독일의 수도 베를린이 소련군에게 점령당하고 

히틀러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이 소식은 

머지않아 이터 성을 관리중이던

  

무장친위대에게도 전달되었으며 이들은 심각한 

혼란과 고민에 빠져야 했어.

 


 
 

무장친위대 총사령관인 히믈러는 진작에 도망쳤고

명령을 하달해줄 지휘관과 상급부대들까지 

모두 공중분해가 되어버린 덕분에

  

이터 성에 고립된 무장친위대 1개 소대 병력이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여야 했거든.



 
 

그래서 이터 성의 지휘관인 세바스찬 위버 중위 

더 이상 VIP 포로들이 협상카드로써 쓸모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고

 

머지않아 이터 성에 연합군이 들이닥치기 전에 

포로들을 전부 처형하기로 결정했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