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에서 무력 최강 장수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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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1 24.01.17 (수) 14:56


포텐에 삼국지 얘기가 나오면 댓글로 꼭 나오는 질문중 하나인데


 


사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딱히 누구라고 확답을 드릴수가 없다'입니다


 


연의에서는 여포가 최강인데, 왜 정사에서는 누구인지 알수가없는가? 하면


 


그 이유는 일기토 빈도에 있습니다.


 


사실 아무리 군 정예화가 어렵던 시절이라고해도, 지휘관이 단독으로 상대 지휘관과 1:1 맞짱을 뜨는거 자체가 쉽지않습니다


 


이건 싸움이 아닌 전쟁이니까요.


 


연의에서는 일기토가 정말 많이 일어납니다


 


거의 매전투마다 나온다고봐도 무방할정도로


 


어느정도냐면, 연의에서 일기토 다승왕인 조운이 (이름조차 안나오는 잡장들 제외)하고 일기토 전적이 약30승이상 3무?2무? 무패입니다


 


장판파에서 이름도없는 잡장들을 병사마냥 도륙낸것만 수십명인데 이거 제외하고 이름이 나온 장수들을 상대로 이긴횟수만 저정도에요


 


하지만, 실제 정사에선 일기토가 거의 일어나지않습니다


 


일기토였다고 사람들이 생각한 대진조차, 일기토인지 아닌지 명확하지않은경우도 있구요


 


예를들어, 마초가 20대시절에 염행이 창으로 찔렀으나, 창이 부러져 창대로 마초를 후려 죽기직전까지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게 일기토인지, 아니면 난전중 일어난 상황인지(마초의 소속인 마등군과 염행의 소속인 한수군의 군주인 마등과 한수는 의형제였지만 수차례 싸우기도 했다고함) 알수가 없죠


 


마찬가지로 방덕이 곽원을 베었다는 기록도 일기토라기보단 난전중 일어난 상황일 확률이 더 높습니다


 


근데 이런거까지 다 포함해도 10건이 안됩니다


 


즉 A가 B를 이겼는데 B는 그전에 C를 이겼으니 A>C이다 라고 결론지을만한 상황이 없다는거죠


 


다만, 아무래도 군대가 정예화되기가 어렵던 시절(그 조조조차 황건적 잔당인 청주병의 활약으로 기반을 다짐)이다보니


 


몇몇 장수들이 혼자 적진에서 무쌍을 찍는다던가 하는 상황은 가끔 나오기도합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 이 장수들은 정사에서도 무력이 탑티어라고 할수있다라고 생각하는 장수들을 몇명 나열해볼까합니다


 


 


 


1.관우


 






관우가 백마전투에서 안량을 벤 일은 유명하죠


 


하후연을 죽인 황충이나 화웅을 죽인 손견등과는 다르게


 


기록은 확실하게 '관우가 적진으로 돌격해 안량의 목을 베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즉 안량은 전투에서 패해 난전중에서 죽은게 아닌, 돌격해온 관우에게 죽은것이 확실하다는겁니다


 


그리고 단기로 돌격했는지, 아니면 소수 기병과 함께 돌격했는지는 기록이 없지만 적진사이에서 상대 사령관을 죽인 관우는


 


딱히 큰 저항없이 본진으로 돌아옵니다


 


안량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죽었기때문에, 혹자는 안량이 문관이었다 또는 안량이 방심했다라고 합니다만


 


방심했다면 그건 안량의 실책이지 관우를 저평가 할 요소는 아니며, 정사에서 나오는 안량의 평가는 우리가 아는 안량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않은것으로


 


이미 아군인 원소군의 저수조차 안량을 일컬어 '용맹은 뛰어나나 도량이 좁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적군의 참모인 순욱은 안량과 문추를 '필부의 용맹'이라고 평가했던만큼 안량은 절대 문관이나 심약한 인물이 아닌


 


적어도 용맹하기는 했던 장수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순욱의 평가는 정확했던지 안량은 적진으로 돌격해온 관우에게 끔살당하고, 문추는 순유의 계략에 걸려 난전중 전사하고맙니다.


 


그리고 삼국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있는 '만인지적'이라는 평가를 당대의 모사들이 했었고(물론 만인지적이라는 평가는 단지 무력으로만 만명을 상대할수있다가 아닌,지략이나 전투에서의 통솔력등 그 인물의 종합적인 능력을 평가한것이긴합니다)


 


삼국지 탑 명장인 주유조차


 


유비를 한량으로 만들어, 관우 장비를 부릴수만 있다면 큰일도 충분히 해낼수있다라고 손권에게 제안한 기록이 있는만큼


 


적어도 무력에 있어서만큼은 장비와 함께 당대 인물들이 이의없이 거의 다 인정했던것같습니다


 


뭐 통솔력에 있어서는 패배한 기록이 많은만큼(물론 승리한 기록이 다수 소실되었을거라고 보통 생각하긴합니다) 의문이 남지만요


 


 


2.장비


 


 






 


장비의 경우 연의에서의 '적장의 목 따오기를 주머니에서 물건꺼내듯한다' 라는 평가와는 다르게


 


딱히 적장의 목을 딴다거나 한 기록은 없지만


 


장비하면 모두가 생각나는


 


장판파에서 일화는 정사에도 기록된 사실입니다.


 


도망가던 유비가 조조군에게 따라잡힐 위기에 처하자, 유비는 기병 약20여기를 장비에게 주며 조조군을 막게(;;)하는데


 


장비는 강을 뒤에두고 다리를 끊은뒤에, 조조군을 향해


 


'내가 장익덕이다 나랑 오늘 결판 한번 내자!'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감히 아무도 나서는자가 없었다고 되어있습니다


 


즉 소리쳐서 조조군을 물린뒤에 다리를 끊고 달아난 연의의 묘사와는 좀 다르게, 뒤에있는 다리를 끊고 배수진을 친뒤 조조군을 향해 소리친걸로 생각됩니다


 


솔직히 조조군과의 사이에 있는 다리를 끊고 나랑 결판보자고 소리치면 이상하잖아요..


 


뭐 이거외에는 기록이 많지않아 딱히 장비가 '무력'으로 해결 본 기록이 없지만(장합을 이겼다거나 촉을 점령할때 여러번 승리한 기록등은 장비의 통솔력과 지략을 보여주는 일화지 딱히 장비가 무력으로 해결본거같진않습니다)


 


앞의 관우의 얘기에서 했던말처럼, 당대 인물들이 만인지적으로 평가했다거나, 겨우 수십기만 이끌고 수천의 조조군을 향해 소리치는데도 아무도 덤비지못했다는 기록등을 봐서 당시에도 인정받는 무력을 가졌던 장수라 생각됩니다.


 


3. 장료


 






 


연의에서는 여포군 휘하에서부터 활약하는 장료지만, 


 


정사에서는 딱히 여포군 휘하에선 기록이 별로없고 그냥 여포가 토벌당하자 스스로 군을 이끌고 조조에게 항복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관도대전중, 문추에게 서황과 둘이서 덤벼들지만 2:1로 문추에게 패배하고(장료는 달려들다 활에 말이 맞고 낙마, 서황은 문추와 일대일 대결을 벌이다 패퇴) 그 문추는 관우에게 몇합도 못버티고 죽음으로써


 


묘하게 관우 띄워주기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만, 이건 연의의 기록이고


 


연의와 정사 모두에 등장하는 기록으로 역시 장료하면 떠오르는 합비전투가 있습니다


 


손권이 무려 10만군을 이끌고 합비를 포위하자, 장료는 800군사를 뽑아 한밤중에 손권을 급습합니다.


 


여기서 장료의 무력이 드러나는 장면이 있는데


 


장료가 오의 군사들 사이에서 무쌍을 찍으며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손권보고 나와서 싸우자고했으나, 손권은 감히 덤빌 생각조차 못했다고 되어있으며


 


장료와 군사들이 오군에 포위당하자, 장료가 포위를 단기로 뚫고 빠져나갔는데


 


그때 포위당한 장료의 군사들이 '저희를 버리고 가십니까!' 라고 소리칩니다.


 


근데 그걸 장료는 다시 적진으로 돌격해, 포위를 풀어버리고 군사들을 구출해옵니다(..)


 


이때 상황을 보면, 오군의 장수 진무는 난전중 전사하고, 반장(관우 잡은 그 반장맞습니다)은 도망치려는 군사들을 베어버린뒤 직접 선두에서 싸우며 지휘했으며, 능통은 손권을 지키기 위해 역시 직접 무기를 들고 싸웁니다


 


서성은 부상을 입은데다가 무기를 잃어, 이것을 하제가 되찾아주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즉, 오군의 장수들이 단 800기의 급습에 직접 무기를 들고 싸워야했을정도로 난장판을 만들어놨다는거죠.


 


소소한 개그장면으로 전투이후, 장료가 활을 잘쏘는 자줏빛 수염을 가진 장수를 봤는데 누구냐고 묻자 그게 손권이었다는(..) 대답이 돌아온 장면도 있습니다.


 


잘못하면 총대장인 손권조차 죽었을수도 있다는거겠죠


 


아무튼 연의에서도 등장하는 이 장면이 임팩트가 강해서, 정사에서의 무력 순위를 꼽으면 관우장비와 함께 항상 들어가는 장수이기도합니다


 


4. 여포






삼국지 시리즈에서 항상 무력100을 마크해주시는 여장군입니다


 


연의에서 나오는 유관장과의 3:1 일기토는 당연히 허구입니다만, 그정돈 아니라도 여포는 적어도 '무력'에 있어선 높은 평가를 받을 장수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여포는 기마술과 궁술에 능해, 비장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인중여포 마중적토도 실제 기록이 있을만큼 무력에 있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장수인듯합니다


 


물론 통솔력에 관해선 동탁군 소속당시 있지도않은 기습이 온다고 헛보고를 하는등 희안하게 겁이 많은 폐급의 모습을 보여주기도합니다만..


 


여포가 동탁을 죽이고 왕윤과 함께 조정을 장악했을때


 


동탁의 잔당인 이각과 곽사가 장안을 공격, 포위하자


 


여포가 곽사에게 일기토를 뜨자고 제안, 곽사가 받아들인뒤 여포가 승리한 기록이 있습니다.


 


즉, 여포는 몇안되는 정사에서의 일기토 승리자입니다


 


다만 곽사는 죽지않고, 여포에게 찔리자 곽사의 군이 달려와 곽사를 구했다고합니다


 


그리고 여포는 이 전투에서 패해(....)달아납니다


 


 


이후, 원소에게 의탁할 당시 똑같이 비장으로 불리던 흑산적 장연과의 전투가 있었는데


 


이 전투에서 여포는 원소군의 선봉으로 나서 장연의 부대를(1만추정) 박살내버립니다


 


인중여포 마중적토도 이때 나온 기록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여포가 유비를 통수치고 서주를 점거했을무렵, 원술이 기령을 시켜 유비를 공격하자


 


유비는 할수없이 여포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는데


 


이때 여포는 연의에서도 나오는 장면인 극을 문앞에 세워두고 활을 쏴서 그 극의 가장자리를 맞추는 신기를 보여줍니다.


 


실제로도 있는 기록입니다


 


이때 지켜보던 여러 장수들은 놀라서 여포를 칭송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합니다.


 


 


 


즉, 여러기록으로 보아 군 지휘능력엔 상당한 문제가 있지만.. 그냥 너랑나랑 무식하게 함 맞짱 떠보자하고 싸우면


 


진가를 보여주는.. 선봉장형 장수였다고 생각됩니다


 


5. 허저+전위


 








조조의 호위무사들인 허저와 전위입니다


 


이 둘의 공통된 기록으로는, 이들이 창을 들고 조조 곁에 기립하고 있는것만봐도 적들이 두려워했다는걸로봐서


 


상당한 체구와 완력의 소유자였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전위의 경우 연의에서도 나오는 장수와의 완전투때, 성 중앙에서 약 십여명의 부하와 함께 장수군의 기습을 막은것으로 되어있으며


 


부하들이 모두 죽고 전위 본인도 창에 수차례 찔리는 상황에서도, 무기를 휘두르며 용맹하게 싸웠다고합니다


 


심지어는 양쪽 겨드랑이에 사람을 끼워 죽여버리는.. 괴력을 보여주기도합니다만


 


결국 전위는 이 전투에서 전사하고맙니다.


 


 


그리고 후임으로 조조의 호위무사를 맡게된게 허저입니다


 


즉, 전위와 허저가 서로 대면한적이 있는 연의와는 다르게


 


허저는 전위가 죽은뒤 후임으로 들어왔으므로 서로 대면한적은 없을것입니다


 


허저는 조조의 호위무사도했고, 몇몇 전투에선 선봉으로 나서 활약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어떻게보면 여포랑 좀 비슷하다고 볼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마초토벌 당시, 조조가 마초와 회담을 가진적이 있는데


 


이때 조조는 허저만을 데리고 갔다고하며, 조조를 죽일 생각을 가지고 있던 마초는


 


옆에있던 허저를 보고 쫄아(..) 조조 암살을 포기해버리는 위엄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여포와 같이, 당시 조정을 장악했던 조조의 호위무사를 맡았던만큼 이들은 상당한 무력을 가졌을것이고


 


기록으로도 범상치않은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6. 방덕


 






마초의 부장이었다가, 후에 장로에게 의탁하고 조조에게 장로가 멸망하자 조조에게 항복해 위의 장수가 된 방덕입니다.


 


 


202년 원담&원상의 연합군과 조조가 싸울 당시에, 방덕은 마초의 부장이었으나


 


마등이 원씨일가가 아닌 조조의 편을 들면서 마초와 방덕을 원군으로 보내게됩니다.


 


이때, 방덕은 한 전투에서 적장 곽원의 목을 베었으며(일기토인지 난전중 전사인지는 확실치않으나 일대일 대결이었다는 기록이 없는것과 머리를 종요에게 보여주기 전까지 그 목이 누구것인지도 몰랐다는것으로 보아 난전중 죽인것으로 보입니다)


 


전투가 끝난뒤 가져온 곽원의 머리를 꺼냈는데, 이를 본 종요(조조군의 그 종요맞고 곽원의 삼촌입니다)가 울자 사과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만 종요는 바로 공과사는 구분해야한다며 딱히 방덕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난전중이라지만 수많은 군사들이 무기를 들고 싸우는 와중 적장을 죽여버릴정도면 범상치않은 무력의 소유자였음을 짐작할수있습니다


 


이후 조조에게 항복하고 형주공방전 당시, 활을 쏴 관우의 이마를 맞추는 기록도 있는데(연의에선 팔에 맞고 독을 빼내는 수술중에 관우가 계집애 같이 울었다는 밈의 시초가 된 그 사건..)


 


활을 쏴서 이마를 맞추는 활 솜씨도 대단하고 그걸 이마에 쳐맞고도 살아남은놈도 참..


 


 


아무튼 방덕은 이 전투에서 결국 관우에게 사로잡혀 항복을 거부하다 참수당합니다


 


 


7. 정봉


 






 


오나라의 후반기 맹장 정봉입니다


 


정봉은 젊었을적부터 전투가 있으면 항상 선봉에 섰다고하며, 수차례 상처를 입으면서도 용맹하게 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손권 사후, 위나라가 공격해오자 선봉으로 나서 적장 한종(한당의 아들..인데. 아버지의 시신을 들고 위에 투항해 오나라를 공격한 골때리는놈입니다)을 죽이는 성과를 보여줍니다.


 


다만, 정봉이 직접죽였는지는 확실치않고 일단 선봉으로 나서 위군을 격파한건 맞습니다


 


 


그리고 이후 문흠이 관구검과 함께 난을 일으켰으나 위군에 패배하고, 도주해 오나라에 항복하러 온일이 있는데


 


이때 추격하던 위군을 또 선봉으로 나서 격파해버립니다


 


이런 기록들때문에, 정봉은 다음에 나올 문앙과 함께 삼국지 후반기의 대표적인 맹장으로 꼽힙니다


 


 


8. 문앙


 






삼국지 후반기의 대표적인 맹장, 문앙입니다


 


연의나 정사에서의 행적이 크게 다르진않고(다만 독발수기능의 난은 연의에 나오지않습니다)


 


연의에선 그 조운과 비견되기까지합니다.


 


연의에선 독발수기능의 난이 삭제되어


 


오히려 공적이 축소됐다는 느낌인데, 이정도만해도 어느정도의 맹장인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아버지 문흠과 관구검이 연합해 위나라에 반란을 일으켰을때, 토벌군이 도착했는데


 


그 군사가 상당히 많아 문흠이 당황하자, 문앙은


 


적군이 이제 막 도착해 안정되지않았으니, 이때 공격하면 이길수있다고 말한뒤


 


문앙과 문흠은 군사를 나누어 토벌군을 기습합니다.


 


다만 문흠은 늦게 도착해 전투에 참여하지못하고 문앙의 군대만 기습을 하는데,


 


이때 토벌군의 총대장인 사마사는 눈의 종기를 빼내는중에 기습 소리를 듣고 놀라서 눈이 빠져나왔다고(..)합니다


 


 


아무튼 기습한뒤, 문흠이 늦게 도착하자 결국 퇴각하게 되는데


 


이를 사마사가 추격하자, 문앙은 '단기필마'로 돌격해 한바탕 무쌍을 찍은뒤 퇴각, 이를 여러번 반복합니다


 


 


이거 미친놈아냐?


 


 


이 행적때문에 문앙이 후반기의 대표적인 맹장으로 꼽힙니다.


 


연의에는 나오지않은 선비족 독발수기능의 난때, 진의 명장 호열이 전사하는등 진나라가 수세에 몰렸으나,


 


사마준과 문앙이 토벌군에 참가하면서부터 전세는 역전되고 결국 수년뒤 독발수기능의 난은 마륭에 의해 완전히 진압됩니다


 


 


9. 감녕


 






아마 오나라 장수중 제일 인기가 많을것으로 생각되는 감녕입니다


 


황조에게 의탁할 당시, 손권이 황조를 공격하자, 손권의 장수 능조(능통의 아버지)를 활로 쏘아 죽인전적이 있으며


 


-연의에서는 이때 이후로 능통이 감녕을 원수로 생각하다가 손권의 중재+감녕이 능통을 구해준일로 서로 화해하고 친구가 되지만


 


정사에서는 딱히 이 둘이 화해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손권에게 투항한 이후, 여러 공을 세우지만 대표적인 일화를 꼽아보면


 


익양대치 당시, 관우가 5천의 병력으로 한밤중에 강을 건너 기습을하려 한적이 있는데,


 


감녕은 단 천명의 병력으로 강의 건너편에서 이를 저지합니다.


 


정확히는 관우가 강을 건너려고 시도하다가 감녕의 소리를 듣고


 


감녕의 소리라는것을 간파한뒤 도하를 포기해버립니다.


 


 


다만 관우가 5배의 병력으로 못이길까봐 쫄았다기보단 미리 강 건너에서 적이 대기하고 있는데 섣불리 건넜다간 낭패를 볼까봐


 


포기한것으로 보입니다.


 


 


이후에 합비전투 당시 장료가 800의 군사로 오군을 기습했던것처럼


 


유수구전투에서 100명의 병사를 이끌고 위군을 기습, 장료처럼 한바탕 행패를 부린뒤 빠져나왔는데


 


이때 손권은


 


'조조에겐 장료가 있지만 나한텐 감녕이 있다!'며 자랑스러워 했다고 합니다.


 


 


10. 조인


 






 


'하늘이 내린 장수' 조인입니다


 


위나라 장수중 용맹이 으뜸이었다고하며, 장료조차 그 다음이었다고 할 정도로 용맹에 있어선 고평가를 받은 장수입니다


 


조조의 친족 버프가 있다고 가정해도, 조홍이나 하후돈 하후연등의 다른 친족들보다도 고평가를 받은것을 보면


 


확실히 용맹했던 장수로 보입니다


 


 


조조의 친족으로써 확실히 기록으로도 위나라에서 많은 공을 세운걸로 나오지만


 


'하늘이 내린 장수'라는 평가가 나온 일화로는


 


남군 공방전 당시, 주유가 공격해오자 부장 우금을 보내 요격하게했는데(우리가 아는 그 우금이 아니라 조인의 부장인 동명이인입니다)


 


우금이 위기에 처하자, 진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십의 병사를 이끌고 돌격해 


 


우금과 병사들을 구출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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